
CB650R E-클러치를 사놓고 이제 겨우 몇 번밖에 타지 못했다. 길들이기라기엔 부끄럽고, 주행기록이라기엔 초라한 숫자. 1~2주에 한 번 탈까 말까 하는 이 리듬 속에서, 엔진은 아직도 따뜻하게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혼다는 길들이기를 대체로 1,000km로 권장하지만, 이렇게 자주 타지 못하면 그 1,000km가 마치 1만km처럼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자주 타지 않아도 그 한 번의 주행이 너무 선명하게 남는다. 오늘처럼 감악산 쪽으로 향하는 밤길, 새로 뚫린 터널의 조명들이 낮처럼 환하게 터져 나오며 어둠을 밀어내는 그 순간, ‘아, 오늘은 그냥 이걸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마다 바이크를 타는 이유가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이런 순간 하나가 다음 한 달을 버티게 만드는 힘이다. 엔진의 열기, 배기음의 진동, 그리고 터널 끝을 빠져나갈 때의 그 압도적인 자유. 그걸 느끼기 위해 다시 키를 돌리고, 스타트 버튼을 누른다.
길들이기는 생각보다 인내를 요한다. 1단, 2단에서 억제된 스로틀 감각, 6,000rpm을 넘기지 않으려는 절제된 손끝, 그리고 일정한 회전수로 유지하며 피스톤 링이 실린더 벽에 스며들 듯 자리 잡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 하지만 문제는 시간보다 ‘간격’이다. 매일 타는 사람은 1,000km를 한 달 만에 채우지만, 나처럼 1~2주에 한 번 타는 사람은 길들이기만 석 달이 걸린다. 그마저도 비가 오거나, 아이들이 아프거나, 주말 일정이 겹치면 또 미뤄진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이런 느린 속도가 좋다. 엔진이 천천히 익어가듯, 나와 바이크의 관계도 느리게 쌓여간다. 한 번 시동을 걸고, 한 번 코너를 돌고, 한 번 연료를 채우며, 조금씩 이 기계의 성격을 배워가는 것이다. 빠르게 타면 몰랐을 숨결이, 이렇게 띄엄띄엄 타면 더 깊이 느껴진다.

감악산 쪽은 예전부터 밤 드라이브의 명소였다. 하지만 요즘은 새로 뚫린 터널 덕분에 그 길이 또 다른 의미로 바뀌었다. 예전엔 어둡고 좁았던 산길을 따라 조심스레 올라가야 했다면, 이제는 LED 조명이 벽면에 줄지어 서 있고, 터널 내부가 마치 영화 세트처럼 환하다. 그 안에서 CB650R의 메탈릭한 실루엣이 반사될 때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같다. 엔진의 열이 공기 중으로 퍼지고, 냉각팬의 미세한 바람이 발목을 스칠 때, ‘이게 진짜 살아있는 기계구나’ 하는 감각이 든다. 풀페어링 알차를 타던 시절에는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카울 안에 감춰진 엔진은 그저 기능적 심장이었을 뿐, 감상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네이키드 바이크의 엔진은 다르다. 모든 게 드러나 있다. 피스톤이 움직이는 방향, 배기 매니폴드가 휘어진 곡선, 프레임과 엔진이 맞닿은 지점까지 전부 시각적으로 드러난다. 그래서 엔진을 본다는 건 단순히 기계의 구조를 보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을 보는 느낌이다.

어릴 적엔 풀카울링된 알차가 세상에서 가장 멋있다고 생각했다. 프론트부터 리어까지 매끄럽게 이어지는 라인, 거대한 사이드 카울이 바람을 가르며 만들어내는 실루엣, 그리고 그 속에 감춰진 엔진의 존재감이 신비롭게 느껴졌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 반대다. 오히려 ‘벗고 있는 모습’이 더 아름답게 보인다. 엔진의 표면에 맺힌 빛, 헤더 파이프를 따라 흐르는 열, 그리고 그 열이 공기를 일그러뜨리며 올라가는 장면이 마치 숨을 쉬는 것 같다. CB650R의 4기통 엔진은 정면에서 보면 정말 예술이다. 네 개의 배기 헤더가 같은 리듬으로 휘어져 아래로 떨어지는 곡선, 그것이 집합되어 머플러로 이어지는 라인의 균형, 그게 얼마나 공학적이면서도 예술적인지 직접 눈으로 보면 안다. ‘디자인된 아름다움’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다.

터널 안을 달릴 때, 라이트가 벽면에서 반사되어 바이크 전체를 덮는다. 그 빛은 마치 카울 대신 엔진을 감싸며 윤곽을 드러낸다. 이때 느껴지는 감정은 단순한 ‘주행의 즐거움’이 아니라 ‘조형미에 대한 감탄’이다. 기계는 냉정하지만, 그 냉정함 속에서 인간은 따뜻함을 느낀다. 손끝으로 전달되는 진동, 발끝에서 느껴지는 변속의 질감, 그리고 클러치가 없어도 자동으로 이뤄지는 E-클러치의 부드러운 작동감. 그 모든 게 조화될 때, 나는 이 기계가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하나의 악기처럼 느껴진다.
E-클러치는 정말 이상한 시스템이다. 클러치 레버가 없는데, 여전히 수동 바이크의 감각이 살아 있다. 페달을 밟을 때의 저항감, 엔진 회전수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변속, 그 흐름이 너무 매끄러워서 오히려 기계적이 아닌 인간적인 느낌을 준다. 손목과 왼손이 자유로워졌지만, 오히려 더 집중하게 된다. 변속 타이밍, 가속의 리듬, 그리고 코너를 돌며 스로틀을 다시 여는 순간까지, 모든 감각이 도로에 밀착된다. 감악산의 터널을 빠져나와 산자락의 공기가 얼굴을 때릴 때, 그 온도 차이 속에서도 변속은 끊기지 않는다. 그 부드러움이 주는 여운은 정말 묘하다.
사실 새 차를 사놓고 이렇게 자주 타지 못하면 사치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바이크는 타지 않으면 의미가 없고, 서 있는 순간부터 감가가 시작되니까.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이건 ‘소유의 사치’가 아니라 ‘감각의 사치’라고. 매일 타지 않아도, 단 한 번의 야간 주행에서 느끼는 그 감정 하나면 충분하다. 사람마다 행복의 단위가 다르듯, 나에게는 ‘한 번의 주행’이 행복의 단위다. 어떤 날은 퇴근길 주차장에 가서 그냥 시동만 걸고 배기음만 듣고 돌아올 때도 있다. 그것도 이상하게 위로가 된다. 엔진의 진동이 가슴을 울릴 때, 세상의 잡음들이 잠시 멈춘다.

감악산은 그런 날 찾기 좋은 곳이다. 늦은 밤, 사람도 차도 적고, 공기가 차가워질수록 엔진의 열은 더 선명하게 느껴진다. 야간 드라이브의 매력은 시야가 제한되기 때문에 청각과 촉각이 더 예민해지는 데 있다. 타이어가 노면을 읽는 소리, 체인의 미세한 장력 변화, 그리고 바람의 흐름까지 다 느껴진다. CB650R은 그 모든 감각을 그대로 전달해준다. 네이키드라서 가능한 감각의 정직함이다. 카울이 없으니 모든 바람이 몸으로 들어온다. 이게 불편함이 아니라 ‘직접적인 교감’으로 느껴진다.
오늘도 터널 안에서 잠시 멈춰서 엔진을 바라봤다. 오렌지빛 조명이 엔진의 표면을 따라 흐르고, 그 그림자가 바닥에 드리워지는 모습이 마치 조각품 같다. 사람들은 흔히 자동차를 예술이라 말하지만, 진짜 예술은 이런 순간에 있다. 기계가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는 순간, 그것이 예술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시동이 꺼진 후에도 귀에는 배기음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그 여운이 너무 길어서, 다시 시동을 걸고 싶어질 정도였다.
자주 타지 못하는 게 아쉽긴 하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매번 탈 때마다 새롭다. 일주일, 이주일 만에 다시 엔진을 걸면, 마치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나는 느낌이다. 처음엔 서먹하지만, 곧 익숙해지는 그 감정. 주행 중에도 “아, 이건 이런 감각이었지” 하고 되새김질을 하게 된다. 사람에게도, 기계에게도 ‘간격’은 감정을 깊게 만든다. 매일 보는 사이보다 가끔 만나는 사이가 더 진심으로 반가운 것처럼. 그래서 나는 이 느린 길들이기를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나와 CB650R의 관계가 더 천천히 단단해지고 있다는 증거다.
바이크를 타면 삶의 리듬이 달라진다. 출발 전에는 늘 설렘이 있고, 시동을 끄고 헬멧을 벗을 때는 늘 여운이 있다. 감악산에서 돌아오는 길, 도시의 불빛이 다시 시야에 들어올 때면 ‘이제 다시 현실로 돌아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그 현실 속에서 다시 다음 주행을 기다릴 이유가 생긴다. 엔진의 열이 식는 동안 나는 다시 나의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여전히 피스톤이 움직이고 있다. 그게 바로 내가 바이크를 타는 이유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교통수단이겠지만, 나에게 CB650R은 하나의 시간이다. 아이들과 가족, 일과 학교, 그리고 내 하루를 지탱하는 여러 역할 사이에서 오직 이 시간만큼은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다. 클러치가 없어도, 페어링이 없어도, 이 바이크는 충분히 나를 해방시킨다. 길들이기가 끝나면 더 자주 타게 될까? 글쎄, 어쩌면 여전히 지금처럼 가끔 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상관없다. 중요한 건 ‘횟수’가 아니라 ‘밀도’니까. 한 번의 주행이 인생의 하루를 바꿀 만큼 강렬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감악산 터널의 조명이 여전히 머릿속을 스친다. 낮처럼 밝은 터널 안을 달리며, 네이키드 엔진의 표면이 그 빛을 반사하는 그 순간, 나는 ‘이게 예술이다’라고 속삭였다. 어릴 땐 외형이 멋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구조가 멋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차이는 나이와 경험이 만들어낸 감성의 차이다. 이제는 속도보다 온도, 출력보다 질감, 카울보다 엔진이 더 중요하다. 나는 지금 그걸 배워가고 있다.
길들이기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이 느린 과정 자체가 ‘길들이기’일지도 모른다. 기계만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나도 이 기계를 이해하는 시간이다. 언젠가 RPM을 제한 없이 올릴 수 있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지금 이 조심스러운 주행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건 단순히 기계적 절제가 아니라, 관계의 존중이다.

오늘의 감악산, 오늘의 터널, 오늘의 엔진. 이 세 가지가 겹친 이 밤이, 아마 올해 가장 선명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라이딩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에게 남기는 기록. 새차를 사놓고 자주 타지 못한다고 자책하기보다, 이렇게 한 번의 주행을 마음속에 깊게 새기며 오래 간직하는 것이 더 의미 있다. 결국 인생의 대부분은 이런 짧고 강렬한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지니까. 그리고 그 중심엔 언제나, 네이키드처럼 솔직한 나와 그 엔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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