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나는 매일 밤 같은 시간에 도로 위에 선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목적지가 정해진 것도 아닌데 어느새 하루를 마무리하는 나만의 습관이 되어버렸다. 낮에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일상적인 일들을 처리하고, 밤이 오면 바이크의 시동을 건다. 그것이 나에게는 루틴이자 명상이다. 다만 매일 같은 바이크를 타진 않는다. 하루는 CB650R, 다음 날은 혼다 비전110. 이렇게 번갈아가며 라이딩을 반복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두 바이크가 주는 감각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CB650R은 긴장감과 집중력을 끌어올려주고, 비전110은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하루는 엔진의 힘에 몰입하고, 다음 날은 조용한 리듬에 몸을 맡긴다. 그 반복이 내게는 완벽한 균형이다.

오늘은 비전110 차례였다. 아직 길들이기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말 그대로 새차다. 스로틀 반응이 부드럽고, 엔진 소리가 고르게 유지되는 느낌이 참 좋다. 요즘은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지만, 비전110을 타면 그 추위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오늘 역시 같은 복장으로 나섰다. 얇은 패딩, 안에 기모 후드티, 그리고 청바지. CB650R을 탈 때와 완전히 같은 차림이다. 일부러 그렇게 입는다. 같은 복장에서 어떤 체감 차이가 나는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출발 전 라이트 아래쪽, 윈드스크린과의 사이에 끼워둔 ‘쿠션’을 손으로 한번 눌러봤다. 이건 고무패드가 아니라 진짜 말 그대로의 쿠션이다. 처음에는 배달 라이더들의 바이크에 달린 인형들을 보면서 ‘왜 저런 걸 달아놨을까’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바람을 막기 위한 장치라는 걸 알게 됐다. 인형의 둥근 표면이 공기의 흐름을 분산시켜, 가슴 쪽으로 들어오는 난류를 막아주는 원리였다. 하지만 나는 인형을 달고 다니는 게 성격상 좀 어울리지 않아서, 아무 무늬 없는 단색 쿠션을 사서 그 자리에 끼웠다. 보기에도 깔끔하고, 효과도 분명했다.

출발하자마자 느껴졌다. 라이트 아래에서 올라오던 찬바람이 거의 사라졌고, 윈드스크린 뒤쪽의 공기 흐름이 부드러워졌다. 바람이 위로 분산되면서 헬멧 윗부분으로만 흐르는 게 느껴졌다. 오늘처럼 기온이 낮은 밤에도 상체는 따뜻했다. CB650R을 같은 복장으로 타면 시속 80km 근처에서 팔이 얼어붙는 느낌이 들 정도였는데, 비전110은 달리면 달릴수록 오히려 체온이 유지됐다. 스쿠터 특유의 언더본 구조 덕분에 하체로 오는 바람이 거의 없었고, 엔진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은근히 무릎 근처를 따뜻하게 덮어줬다. 마치 온열시트 위에 앉아 있는 듯한 감각이었다. 나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아서 일부러 조금 더 달렸다.

바람의 흐름이 달라지니 헬멧 속 공기도 변했다. 쇼에이 Z-8에 장착된 핀락은 오늘 제대로 제 역할을 했다. 핀락은 김서림 방지용으로 장착한 건데, 오늘은 오히려 너무 따뜻해서 안쪽에 습기가 찰 정도였다. 주행 중에도 헬멧 안의 공기가 따뜻하게 유지되니까, 내 호흡이 식지 않고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신호에 멈춰 설 때마다 그 미세한 뿌연 김이 바이저 안쪽에 맺히는 걸 보고 괜히 웃음이 나왔다. 이런 날씨에, 게다가 밤인데 헬멧 안이 덥다고 느낀 게 신기했다. 대형 윈드스크린과 쿠션의 조합이 이렇게까지 체감을 바꿔줄 줄은 몰랐다.

풀스로틀로 땡겨도 속도는 80~90km 정도에서 머물렀다. 하지만 그 이상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 속도대에서 엔진은 가장 부드럽고, 진동도 거의 없다. 비전110의 엔진음은 작지만 일정한 리듬을 유지하고 있어서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CB650R은 듣는 순간 심장이 빨라지지만, 비전은 반대로 안정된다. 그건 마치 빠른 심장박동과 느린 호흡을 번갈아 조절하는 것 같은 차이였다. 나는 오늘도 그 느린 리듬에 몸을 맡겼다. 고속도로는 가지 않았다. 일부러 한적한 외곽 도로를 따라 일정한 속도로 달렸다. 나는 골목길을 좋아하지 않는다. 불빛이 들쭉날쭉하고, 갑작스럽게 나오는 차량이나 보행자 때문에 리듬이 끊긴다. 그래서 오늘도 처음부터 끝까지 비교적 넓고 일정한 도로만 선택했다. 스쿠터라고 해서 꼭 좁은 길로 다닐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일정한 속도를 유지할 때 비전110의 안정감이 제대로 드러난다.

달리는 내내 들리는 건 바람이 아니라 도로의 질감이었다. 타이어가 아스팔트를 스치는 소리, 가끔씩 지나가는 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치는 그림자, 그리고 내 그림자가 그 위를 스쳐가는 모습.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나와 비전만 존재했다. 엔진은 조용했고, 스로틀은 부드러웠다. 381km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건 단순한 주행거리 이상의 것이었다. 그건 이 바이크가 점점 나의 루틴 속으로 녹아들고 있다는 증거였다. 이제는 ‘언제 탈까’가 아니라 ‘오늘은 어느 걸 탈까’로 바뀌었다. 하루는 CB650R, 다음 날은 비전110. 이 교대 주행이 내 하루를 완성해준다. 650을 타면 긴장하고, 비전을 타면 풀린다. 그리고 그 둘을 반복하다 보면, 하루의 피로가 정확히 절반씩 분산된다.

어느새 도심을 빠져나와 바람이 한층 차가워졌지만, 여전히 따뜻했다. 쿠션의 효과 덕분에 상체로 올라오는 난류가 사라지고, 스크린 뒤에는 일정한 공기층이 생겼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온도는 마치 늦가을의 실내처럼 포근했다. 손끝도 시리지 않았다. CB650R을 탈 땐 열선 장갑을 써도 바람이 스며들었는데, 비전110에서는 그런 필요가 없었다. 겨울이 되어도 아마 이 구조라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엔진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으니 장시간 타도 피로감이 적다. 이런 감각을 유지한 채로 천천히 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아쉽다. 엔진이 식기 전까지는 멈추고 싶지 않은 마음. 그래서 집 근처에 도착하고도 몇 번을 더 돌았다. 하지만 골목길은 가지 않았다. 조용한 직선 구간만 반복했다. 나에게 골목은 불안의 상징이고, 직선은 안정의 상징이다. 비전은 안정적일 때 가장 매력적이니까.

집 앞에 도착했을 때, 계기판의 숫자가 여전히 381km를 가리키고 있었다. 오늘은 주행거리를 늘리려는 목적이 아니라, ‘이 감각을 다시 확인하기 위한 주행’이었다. 시동을 끄자, 엔진에서 미세한 열기가 남아 있었다. 그 따뜻한 온기가 허벅지로 전해졌다. 헬멧을 벗으니 핀락 안쪽에 맺혔던 습기가 살짝 뿌옇게 변해 있었다. 그래도 그 덕분에 라이딩 내내 시야가 흐려지지 않았으니, 핀락은 오늘도 완벽하게 제 역할을 했다. 가볍게 헬멧을 털어내고, 바이크를 차고 안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문득 생각했다. “이게 진짜 내가 원했던 리듬이구나.” 하루는 강렬하게, 하루는 조용하게. 둘 다 밤이기에 가능한 루틴이다.
CB650R과 혼다 비전110. 전혀 다른 두 기계가 내 밤을 번갈아 채운다. 하나는 엔진의 긴장으로, 다른 하나는 공기의 따뜻함으로. 그 둘의 교대 속에서 나는 균형을 찾는다. 누적 381km의 비전은 여전히 새것의 냄새를 풍기며 오늘도 나에게 속삭였다. “내일은 네 차례야.” 그리고 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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