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번째 바이크 박스를 개봉하는 순간은 언제나 묘한 설렘과 현실감이 동시에 밀려온다. 포장을 벗기고 아직 한 번도 도로 위를 밟지 않은 새 타이어의 냄새를 맡는 그 순간, 이건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새로운 장난감’을 맞이하는 기분이다. 이번엔 더욱 그랬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편안함’을 찾게 되고, 동시에 외형적으로도 멋진 바이크를 타고 싶은 욕심이 생긴다. 그래서 결국 지르게 된 게 바로 2025년식 혼다 CB650R E클러치였다. 사실 이번 결정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단순히 스트레스를 어디엔가 풀고 싶었던 순간, 평소 마음속에만 담아두던 바이크 한 대를 그냥 질러버린 거다. 계산도, 합리화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 요즘 내 마음은 단순했다. 일본에서 건너온 낡은 중고차들, 이른바 ‘썩차’들을 만지며 괜히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바이크 신차를 박스로 깔끔하게 까서 내 손으로 조립하고, 새 기름 냄새 맡으며 편안하게 타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썩차는 네 바퀴짜리 자동차들이다. 예전엔 그 낡은 차들 리스토어하면서 재미를 느꼈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런 게 피로하게 느껴진다. 결국 나이를 먹으면서 변한 건 취향이 아니라 ‘피로를 감내할 수 있는 여유의 크기’였다.

박스를 뜯고 나오는 순간, 그 광택은 진짜 예술이었다. 새 바이크의 냄새, 탱크 표면의 깨끗한 코팅, 아직 한 번도 연소되지 않은 실린더 안의 고요함까지. 그리고 그 위에 적힌 ‘E-Clutch’라는 단어가 마치 미래로 넘어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혼다는 이번 CB650R을 통해 ‘완전 수동’과 ‘완전 자동’ 사이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클러치 레버가 사라졌지만, 변속은 여전히 손으로 한다. 엔진 회전수, 스로틀 개도, 속도, 기어 위치를 센서가 실시간으로 감지하고 ECU가 판단해 자동으로 클러치를 잡아준다. 덕분에 출발과 정지, 변속 구간에서도 손목이 편하고, 막히는 시내에서도 클러치 조작 스트레스가 없다. 하지만 문제는… 내 몸이 그걸 아직 믿지 못한다는 것이다.

E클러치 바이크를 처음 타보는 입장에서 제일 당황스러웠던 건 바로 ‘습관’이었다. 클러치를 잡을 필요가 없는데도, 자꾸 왼손이 허공을 더듬는다. 변속 타이밍에 맞춰 본능적으로 레버를 찾는데, 그 자리에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 묘하게 허전하다. 마치 오래 사귄 연인에게 익숙한 인사를 하려다가 상대가 다른 곳을 보고 있을 때처럼 어색하다. 심지어 출발할 때는 클러치 없는 걸 알면서도 손가락이 반사적으로 움찔한다. 매뉴얼 바이크를 안 탄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그 오래된 습관은 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클러치를 잡는 감각’이 손끝에 살아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손이 먼저 기억하고, 뇌가 나중에 반응한다. “이제 클러치 없어도 돼”라고 머리가 말해도, 손은 이미 반쯤 쥐어버리고 있다. 이게 바로 라이더의 본능일까. E클러치가 얼마나 자연스러운 기술이라 해도, 익숙함을 이겨내는 데엔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이 어색함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질감 덕분에 새로움을 느낀다. 내가 오랜만에 진짜 ‘새 기술’을 체험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예전엔 기계가 내 손의 명령을 따라야 했다면, 이제는 기계가 내 의도를 읽고 먼저 움직여준다. 혼다는 이걸 단순한 편의 기술로 끝내지 않았다. 사람이 느끼는 리듬과 기계의 반응을 최대한 자연스럽게 연결하려 했다는 점에서, E클러치는 확실히 ‘혼다다운 기술’이다. ‘Human Fitting Technology’, 즉 사람과 기계의 조화를 추구하는 철학이 이번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시승 중 변속 버튼을 누를 때의 반응은 부드럽고, 저단에서 고단으로 이어질 때의 연결감도 자연스럽다. 수동감은 남아 있으면서도, 번거로움은 사라진 새로운 감각. 이건 단순히 기술의 발전이 아니라, ‘라이딩의 진화’라고 말할 수 있다.

출고 당일에는 바로 언더카울과 블랙박스를 설치했다. 요즘은 바이크에도 블랙박스가 필수다. 도로 상황이 너무 급변하고, 누가 어떤 방향에서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세상이니까. 10년 전만 해도 ‘바이크에 블박을 단다고?’ 하며 웃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없으면 불안하다. 기술의 발전이 편의성을 넘어 ‘안심’을 주는 시대가 된 셈이다. 언더카울은 CB650R의 근육질 네이키드 디자인과 묘하게 잘 어울렸다. 살짝 공격적인 라인에 하단 밸런스를 잡아주면서, 전체적으로 더 단단한 인상을 준다. 새 바이크에 처음 손대는 그 기분, 마치 새 집에 가구 들이는 느낌이랄까. 모든 게 깨끗하고, 모든 게 나만의 선택으로 채워지는 순간.

적산거리 1km. 사실상 테스트 주행 수준이지만, 그 숫자가 주는 상징성은 크다. 이제 막 첫 걸음을 뗀 느낌이다. 이 거리가 얼마나 늘어날지, 얼마나 많은 추억이 쌓일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번엔 오래 가보려 한다. 예전처럼 몇 년 타다가 팔고, 또 다른 모델로 갈아타는 그런 식이 아니라, 진짜 ‘내 바이크’를 하나 두고 천천히 나이 들어가며 함께하고 싶다. 이 바이크를 선택한 건 단순히 외형 때문이 아니라, ‘오래 함께할 수 있는 편안함’ 때문이었다. 혼다의 엔진은 부드럽고, 기계음은 정갈하다. 진동도 거칠지 않다. 이건 정말 오래 탈 수 있게 만들어진 바이크다.

CB650R은 혼다 네이키드 라인업의 중심 모델이다. 4기통 수평 엔진이 만들어내는 배기음은 고회전으로 갈수록 맑고 균일하며, 여기에 E클러치의 자동화가 더해지면 도심에서도 피로감이 거의 없다. 출근길 막히는 도로에서도 손목이 편하고, 스로틀 반응이 자연스럽다. 클러치 잡지 않아도 시동 꺼질 일 없고, 정지 상태에서 재출발도 부드럽다. 하지만 동시에 스포티함은 그대로다. 언덕길에서 다운시프트 시 버튼을 눌러 클러치처럼 미세하게 컨트롤할 수도 있다. 이런 양면성이 CB650R E클러치의 진짜 매력이다.

집 차고에는 이미 혼다 비전110이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이젠 완전히 혼다빠가 된 셈이다. 비전110은 실용적인 도시형 스쿠터로, 출퇴근이나 장보기용으로 완벽하다. 그 옆에 CB650R이 들어서니, 마치 성격 다른 두 형제가 나란히 서 있는 느낌이다. 비전110은 성실한 동생, CB650R은 멋을 아는 형. 두 대 모두 혼다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 있다. 신뢰성, 부드러움, 그리고 세월이 흘러도 무너지지 않는 완성도. 솔직히 한 번 혼다를 타보면 다른 브랜드로 돌아가기 어렵다. 그만큼 밸런스가 좋다.

결국 이번 선택은 ‘합리’보다 ‘마음’이었다. 썩차 만지며 스트레스 받느니, 차라리 신차를 까서 여유 있게 타는 게 나았다. 바이크는 결국 감정의 탈것이다. 숫자나 스펙보다 중요한 건 타는 순간의 만족감이다. 그래서 이번 CB650R E클러치는 내 인생의 새로운 균형점을 상징한다. 편안함과 기술의 경계, 과거의 습관과 새로운 시대의 중간. 여전히 왼손은 허공을 향해 클러치를 찾지만, 곧 이 손은 ‘편안함’에 적응할 것이다. 그게 나이 든 라이더로서의 성장일지도 모른다.

결국 나는 또 혼다의 철학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클러치를 놓았지만, 바이크에 대한 애정만큼은 여전히 쥐고 있다. 적산거리 1km에서 시작한 이 여정이, 언젠가 10만 km를 넘길 때쯤엔 손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적응해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때도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역시 썩차보단 새차가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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