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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y

아기가 밥을 안 먹어요, 입맛 없는 걸까요? 기싸움일까요?”

by 예쓰상 2025.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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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숟가락 뜨기까지 열 번은 말 걸고, 백 번은 재롱 떨어야 한다. 입에 겨우 한 입 넣었더니 뱉어내고, 좋아하던 음식도 오늘은 싫다며 손으로 밀어내고, 밥그릇을 뒤엎으며 울어버리기까지 하면 부모는 속이 타들어간다. “왜 이렇게 안 먹지?” “입맛이 없나?” “어디 아픈 건 아닐까?” “혹시 나랑 기 싸움하는 건가?” 밥 한 끼를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이 전쟁 같은 시간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부모도 아이도 지쳐버린다. 그런데 정말 아기는 밥을 ‘안’ 먹는 걸까? 아니면 다른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내고 있는 걸까?

 

 

 

 

생후 12개월을 지나면서 아이의 식욕은 급격히 줄어든다. 하루가 다르게 크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성장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기 때문이다. 이전처럼 매 끼니마다 왕성한 식욕을 보이지 않는 건 지극히 정상이다. 그런데 어른들은 그걸 잘 모른다. 어제는 잘 먹었는데, 오늘은 왜 이럴까? 저녁을 안 먹었는데 배고프지도 않나? 우리 기준의 ‘정상적인 식사량’을 아이에게 덧씌우고, 그에 미치지 못하면 불안해하고 조바심을 낸다. 사실 아이는 안 먹는 게 아니라, 지금 ‘먹고 싶은 만큼만’ 먹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게다가 아이는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존재가 아니다. 식사는 아이에게 수많은 감각과 감정을 자극하는 시간이다. 식감, 온도, 냄새, 색깔, 손에 묻는 감촉까지—어른이 무심히 넘기는 모든 요소가 아이에겐 ‘낯설고 새로운 자극’이다. 어떤 날은 그 자극이 재미있게 느껴져 신나게 먹다가도, 어떤 날은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져 입도 대지 않는다. 그러니까 매번 같은 반응을 기대하는 건 오히려 부모의 착각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식사가 아이의 ‘자율성’을 가장 먼저 시험하는 영역 중 하나라는 점이다. 수저를 들지 않는 건 “지금은 내가 하고 싶지 않아”라는 뜻일 수 있고, 좋아하던 반찬을 거부하는 건 “오늘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라는 마음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단지 ‘안 먹는다’는 표면만 보고 해석하려 든다. 그럴수록 아이는 더 고집을 부리고, 부모는 더 조급해진다. 어느새 식탁은 전쟁터가 되어버린다.

 

 

 

 

이럴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은 먹이라는 목표보다 ‘먹는 분위기’를 먼저 만들어주는 것이다. 억지로 먹이려 하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먹고 싶어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태도. 숟가락을 내려놓고도 혼나지 않는다는 안심. 맛있게 먹는 부모의 모습. 간식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한 끼 한 끼에 목숨 걸지 않는 여유. 이런 것들이 쌓이면, 아이는 자연스럽게 다시 식탁 앞에 앉는다.

물론 언제나 여유롭기만 할 수는 없다. 때로는 진짜 걱정되는 날도 있다. 며칠을 잘 안 먹고 체중이 빠진다든지, 물조차 거부할 때라면 병원에서 점검을 받아보는 것도 필요하다. 하지만 단순히 기분을 타거나, 입맛이 없어 보이거나, 새로운 음식 앞에서 머뭇거리는 정도라면, 그건 ‘성장통’이다. 입을 여는 게 아니라, ‘자기를 표현하는 방식’을 배우는 과정 중 하나다.

 

 

 

 

그러니 오늘 또 밥숟가락을 놓아버린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보자. “그래, 지금은 먹기 싫구나. 괜찮아, 배고프면 말해.” 그 말 한마디가 아이에게 ‘음식은 싸움이 아니라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 그렇게 음식 앞에서도 자신을 존중받은 경험이 쌓이면, 언젠가 아이는 스스로 먹고 싶어하는 사람이 된다.

 

 

 

 

결국 밥을 안 먹는 아기를 대하는 일은, 아이의 마음을 기다리는 일이다. 배보다 마음이 먼저 찬다는 말처럼, 오늘 아이의 마음이 따뜻해졌다면, 그 한 끼는 실패한 게 아니다. 오히려 그런 밥상이 아이의 평생 식습관을 만든다. 그러니 오늘도 식탁 앞에서 지쳐가는 당신에게 말하고 싶다. 잘하고 있어요. 조급해하지 말아요. 밥 한 숟갈보다 중요한 건, 그 아이와 나누는 온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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